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이상한 날이었다.

후암동의 골목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있는데 감나무 아래에서 한 할아버지가 말을걸어오셨다. 
한달에 이백만원인가 백만원을 버신다고 자랑하시다가, 한달에 십만원이면 생활하신다고. 비싼 새쌀 말고 저렴한 묵은쌀을 드시면 된다고 하셨다. 젊었을때 일을 열심히 해서 저축해야한다고 강조하시던 할아버지는 나무 아래 사람들이 앉아서 쉬어갈수 있게 돌의자를 몇개 만들어 둘 만큼 따뜻하신 분이셨는데 돈을 손에 쥐고 있어야 부부사이도 좋아지고 자식들도 효도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우리를 집안으로 초대해서 음료수를 한캔씩 주시며 국가유공자 증명을 보여주셨다. 빗물을 받아서 정원에 물을 주신다며 아무리 싼것도 아껴야한다고 하셨다. 혼자 사시냐고 물었더니, 혼자 살지만 머릿속에 먼저 돌아가신 부인이 살고계신다고 하셨다. 먼저 가신 부인께 이것저것 못해드린게 걸리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셔서 우리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시곤 했다.

다음 골목에서 경관이 좋은 장소에 널린 빨래를 걷으시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뭐하는 사람들이냐,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라고 하셨다. 안그래도 여기 사시는 분들과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터라 사양하지않고 따라들어갔다. 집안은 특이하게도 사다리꼴 형태의 부정형 공간이었다. 잠시 앉아서 따님 아드님 이야기를 들어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갑자기 우리가 밥을 안먹었을것 같다며 라면을 끓여주신다고 하셨다. 너무 예쁜 청색의 그릇에 라면을 담아주시고 놋그릇에 맛있는 김치를 내주셨다. 모자를 만드시는 이야기, 따님이 미대에 다녀서 같이 이것저것 전시도 보러다니신다고. 얼마전 키아프에 가서 어떤 작가의 팜플렛을 달라고 했는데 안주려고 해서 역정이 난 이야기, 삼청동 옷가게에서 좋지도 않은 옷을 못만지게 하면서 엄청 비싸게 파는 사람이 역겨웠다는 이야기를 공들여서 길게 하셨다. 대화중 몇차례 언급된 김기덕영화를 좋아하시는듯 문득 맞은편에 앉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시며 김기덕감독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려는데 우리의 이름을 물으시고 유광식씨의 나이를 묻고 얼굴이 보통이상인데 왜 없냐며 결혼을 염려하시고 사진도 좋지만 돈을 벌고 생존해야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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