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서울역 근방

서울기차역: 속도의 정치학과 식민지화


더이상 애뜻함이 묻어나오지 않는 공간.쇼핑물, 영화관, 카페들과 상점들은 더이상 사람을 사람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를 발명했다. 자신의 신체의 연장처럼.
기차는 운송의 수단(기계)이고 집은 거주의 수단(기계)이다.

산업혁명; 모네의 기차역 풍경 그림. 연기를 내뿜으며 우렁찬 말처럼 발을 구르며 수백명의 사람을 한번에 옮길 수 있는 기차.

대우빌딩: 서울 현대사 압축한 그로테스크한 조형물
지하 2층, 지상 23층 (김우중 전 대우그룸 회장 집무실은 25층에 위치 했었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고도 성장의 상징물
청호대 경호실이 대우빌딩 북측 청와대 방향 창문을 모두 가리라고 한적도 있고,
옥상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방공포 4대가 설치되어 민간이 출입이 통제된 적도 있었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자산괄니공사와 금호 아시아나 그룹을 거쳐 현대 모건 스탠리가 주인이 되면서 이름을 ‘서울 스퀘어’라고 바꾸었다.
여의도 63빌딩보다 더 먼저 세워졌다.
서울역과 그 광장 맞은편에 세워진 대우빌딩은 서울에 처음 올라온 사람들이 비로소 서울에 입성(눈감으면 코베어간다)했음을 인식시켜주는 기념비였다.

한일합방이후 일본은 도심과 가까운 역의 필요성으로 조선 총독부가 남대문정차장을 경성역으로 개량하였는데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진출하기 위한 의도였다.-일제의 동북아 식민화의 중추 기관
이용객의 수가 늘자 1922년 기존의 남대문 역사 북측 봉래교 옆에 임시역사를 세운 후 기존 역사를 완전히 제거하고 지하1, 2층의 르네상스양식으로 세로 준공.

설계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역사를 원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유럽대륙을 원본으로 서구지향주의적 욕망을 복재와 재현으로 건설한 것이 경성 역사이다.

서울역은 만남과 이별의 정차역, 대도시와 고향의 교차점, 새로운 삶을 향한 불안하고 불투명한 입구였다.

코레일 측은 2011년 8월부터 밤 11시 이후 노숙인이 서울역사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다.

2005년 옛 서울역사가 근데 건축 양식을 되살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문화역284 :한국전쟁시 파괴된 돔 아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복원, 총단자국 그대로 살림. 1층(대합실 및 귀빈실)은 전시, 공연, 2층(이발소와 양식당)은 다목적 회의와 연구소 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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